만년필을 사용해 보길 추천합니다.
내가 만년필을 사용하는 이유
그 어느 날 세수를 열심히 하다가 거울을 보다 알게 됐다. 입가에 눈가에 주름이 생겼다. 분명 천천히 노화는 진행되고 있었겠으나 바쁘게 살다 보니 모르고 지나쳤던 것이리라...
20대 후반에 직장에 취직하고 아내를 만나 결혼하고 남들 모두 그렇듯 나 또한 바쁘게 살아왔다.
그런데 30대 후반이 돼서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왜 사는지 급격히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그런 상태에서 가족과 함께 서울시내 대형문구에 나들이를 갔다. 마침 아이가 5살이 되면서 한글을 가르칠 시기라 문구류를 사주려고 이리저리 돌아보다 만년필이 눈에 들어왔다.
중고등학생 시절 별 이유 없이 멋 부리기 용으로 집에 돌아다니던 파커 만년필 한 자루를 6년 동안 썼던 기억이 떠올랐다. 파이롯트 검정잉크 한병 사서 꾸준히 사용했던 경험. 그 당시 내게 만년필을 왜 사용하냐는 질문을 던지던 친구들의 얼굴과 이름. 만년필과 연관된 기억과 그 순간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진열대 안에 만년필을 한 동안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는데 아내가 다가와 하나 선택하라고 말을 건넸다. 그날 별생각 없이 라미 사파리 만년필을 집었고 양장 노트를 함께 구입해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일기를 쓰던 몇 달 동안은 하루에 있던 일들을 타임라인 별로 나열하는 단순한 기록이었다.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내 생각과 그 생각을 왜 하게 되었을까 추측하기 시작했고, 글 양이 늘어남과 동시에 "나" 란 사람에 대해 많은 관찰을 하게 되었다. 일기를 쓰기 시작하며 우울증세가 없어지고 긍정적인 모습으로 변화되는 나를 느끼게 됐다.
그렇게 7년이 지났다.
내가 만년필을 사용하는 이유는 별 이유 없다. 그냥 스스로 만족감을 얻고자 시작 됐다.
쓸만한 만년필을 추천한다면
적당히 현실적으로 추천한다면...
- 독일 브랜드 라미
- 일본 브랜드 플래티넘
- 일본 브랜드 세일러
- 독일 브랜드 파버카스텔
- 미국 브랜드 파커
난 5개 브랜드 제품 중 3 ~ 10만 원대 제품들을 추천한다.
내가 사용해 본 브랜드들 중 만족도가 높고 뽑기가 잘 나온 순서대로 나열했다.
각 브랜들 마다 특징을 설명하자면 라미는 상당히 실용적이며 제품의 신뢰도가 뛰어나다. 의외로 만년필을 개봉하고 잉크를 넣은 후 사용하다 보면 일명 헛발질 현상이 자주 나타난다. 이 현상이 꽤 스트레스를 준다. 종이와 궁합이 안 맞아서 그럴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펜촉의 불량이다.
난 헛발질을 뽑기라고 생각하는데 고가든 유명 브랜드든 불량률이 의외로 꽤 높다. 혹시나 만년필을 구매했는데 잉크가 종이에 나오다 말 다를 반복한다면 너무 속상해말고 여러 종이에 글씨를 써보길 바란다.
그래도 글씨가 써지다 말다 끊기길 반복한다면 판매처에 AS 또는 교환을 요청해야 한다.
1. 독보적인 실용성과 합리적 가격. 독일에서 온 라미
라미 만년필의 경우 총 4개를 구입했었다. 라미사파리 2개, 스튜디오, 룩스 등이다.
사파리와 룩스는 비슷한 외형이며 재질과 크기가 약간 다르다. 라미 브랜드의 시그니처 제품인 사파리는 손잡이 부분이 강제적인 모형이 있어서 약간 거부감이 들 수도 있다.
라미의 스튜디오는 사파리보다는 고가이며 둥근 손잡이, 고급스러운 재질, 트레디셔널한 디자인의 만년필이다. 하필 이 만년필에 헛발질이 존재한다. 하지만 종이 재질에 따라 헛발질이 없기도 하기에 그냥 사용하고 있다.
라미의 고가 제품을 사용해 본 적은 없지만, 상당히 튼튼하고 필기구로써 편안함이 있다. 가격이 적당해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부드러운 필기감보다는 딱딱한 느낌이지만 글씨는 또박또박 써지는 그런 필감이다.
2. 니뽄 만년필 3대 제조사 중 하나 푸라치나, 플래티넘
전통적으로 일본 제품들은 세필 (얇은 촉)로 유명하다. 플래티넘 제품들 중 가장 유명한 건 저가 라인의 프레피, 그리고 센츄리 시리즈가 있다. 사실 센추리가 8 ~ 25만 원대에 가격을 형성하니 누군가에게 중저가일 수도 있겠지만, 나 같은 사람에게는 고가의 만년필이다.
2023년 지금은 단종되었지만, 로듐으로 도금되었고 14k 금촉, 은장 장식의 브루고뉴 만년필을 갖고 있다. F 펜촉이지만 글씨를 써보면 독일의 EF와 비슷한 굵기다. 만족도가 꽤 높은 만년필이지만 헛발질이 있던 제품이다. 국내 판권을 갖고 있던 정식 수입업체에 보내 펜촉 보정을 받아야 했던 짜증 나는 경험이 있으나 만족도가 꽤 높은 만년필이다.
필감은 라미보다 부드럽고 글씨를 하나하나 종이에 새길 때마다 고급스러운 맛이 난다.
3. 세일러
일본의 3대 만년필 제조사.
내가 소지한 제품은 프로피트 영이며 왜 일본 제품이 세필로 유명한지 느낄 수 있는 만년필이다.
몽블랑 제품과 비슷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나쁘게 말하면 카피.
함께 일했던 동료가 프로페셔널 기어를 소지하고 있었는데 사용해 보니 얇은 세촉이나 편안한 필기감이 일품이었다. 원래 촉이 얇을수록 헛발질이나 펄감의 부드러움이 덜 하다.
프로피트는 몽블랑 짝퉁이라는 인식이 나름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고가의 프로페셔널 기어를 많이 선택한다.
4. 파버카스텔
연필 카스텔 9000 으로 너무나도 유명한 회사다.
한국에서는 그다지 라미나 일본 3사 제품에 비해 선택을 받지 못하는 경향이 있지만 라인업도 꽤 많고 고가의 제품들은 해외에서 몽블랑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기도 하다.
재미 삼아 저가 만년필 두 개를 구입해 사용해 봤는데 라미와는 느낌이 다르지만 몇 글자 써보니 독일 만년필들만의 비슷한 느낌이 있더라. 실용적이며 기능성이 확실히 뚜렷한 필감이다.
그 밖의 만년필과 이야기들
언급하지 못한 미국 파커, 대만 트위스비, 일본 파일롯, 독일 펠리칸, 이태리 오로라 등 유명한 만년필 제조사들의 훌륭한 만년필들이 존재한다.
개인적으로 펠리컨사의 소베렌, 오로라사의 입실론 등을 구매하고 싶었지만 헛발질의 충격과 공포로 기존 만년필에 만족하고 있다. 그만큼 헛발질이 많다.
사실 만년필은 다른 종류의 필기구에 비해 가격이 엄청나게 비싸다고 할 수 있다. 볼펜 한 자루에 1,000원 안팎인데 통산 만년필은 아무리 저가라도 3,000원 이상은 하니까 확실히 저렴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만년필을 사용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가오, 필기감, 실용성, 개성... 아날로그 감성 등이 많이 언급되지만,
오래오래 사용할 수 있다. 아마도 죽을 때까지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말이다.
또한 개인마다 필압이 다르고 손에 필기구를 쥐는 형태도 다르다. 만년필은 사용하면 할수록 그 다름에 익숙해져 가고 맞춰진다. 오직 사용하는 사람에 맞게 펜촉이 최적화가 된다. 이 또한 매력 아닌가?
생각해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범한 필기구들을 몇 번 사용하다가 잊게 된다. 아마도 가격이 저렴한 이유가 가장 크겠지만 그에 비해 만년필은 가격도 꽤 비싸고 그러므로 내 소중한 그 무엇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아~. 한 가지 중요한 팁을 언급하지 못했다.
만년필만큼이나 다양하고 깊은 이해가 필요한 분야가 잉크와 종이 재질이다.
만년필은 종이, 잉크와 함께 3박자 궁합이 맞아야 한다. 꽤 거추장스럽고 불편하기도 하겠지만 꼭 비싸고 고급스러운 노트라고 해서 만년필과 궁합이 맞는 것 아니니 기억하길 바란다.
예를 들면 꽤 이름난 몰스킨 노트의 경우 대부분 제품의 종이 굵기가 얇기 때문에 만년필과는 궁합이 절대 안 맞는다. 로이텀의 경우도 타제품의 비해 얇지만 그나마 종이가 견딘다. 궁합의 차이지 만년필의 기능과는 관계가 없다는 의미다. 잉크도 비슷하다. 가능하면 사용하는 만년필사의 잉크를 사용하는 것을 추천하며, 꽤 이름난 유명 잉크들을 사용하길 바란다.
만년필에 적합한 노트인지 포털사이트에서 알아본 후, 구매. 유명 노트 제조사도 만년필 전용 노트도 따로 판매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내지 재질 70g/m이라고 써진 부분을 봐야 한다. 너무 얇다. 잉크가 번지게 된다. 재질 두께 수치가 높을 수록 일단 만년필용으로 적합하다고 보면 된다.
로이텀은 80g/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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