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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by 슬기로운 동네 형 2023.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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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삼나무가 있는 밀밭

 "삼나무가 있는 밀밭" 은 1889년 고흐의 유화 작품이다.
 풍푸하고 부드러운 곡선으로 바람과 밀, 그리고 삼나무와 하늘을 표현했다.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하는 그림이며 이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뾰족했던 마음이 한결 부드러움을 느끼곤 한다.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런던의 내셔날 갤러리의 소장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나른한 주말 특별히 집안행사가 없다거나 딱히 고민할 일이 없다면 명화를 따라 그리곤 하는데 아쉽게 이 작품을 모사하려다가 두어 번 실패했다.

자화상을 제일 많이 그린 화가

 그가 천재일수 밖에 없는 이유

 고흐는 미술학교를 나온 사람도 아니고 스승도 없었다.
 네덜란드 남부에서 태어난 그는 독일 개혁 교회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원래 꿈은 성직자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번번이 신학 대학 입학에 낙방하고, 교회에서도 그의 기질과 성격적 문제를 들어 전도사로 받아주지 않았다고 한다. 한 동안 성직자가 되길 희망하며 노력했지만 그쪽으로는 재능도 없고 사회적으로 인정받지도 못했나 보다.
 동생 테오 반 고흐의 조언으로 화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27세에 화가의 길로 들어선다. 늦은 나이에 화가가 되었고 어떤 미술교육도 받지 못한 그가 그리고 그의 작품들이 후세의 사람들에게 엄청난 영감과 감명을 준 것을 보면 그가 천재가 아님을 증명할 길이 없다.

고흐의 명작들

 고흐의 명작이라 하면 많은 사람들은 "별이 빛나는 밤"과 "밤의 카페테라스", "해바라기" 등을 떠올린다. 모두 훌륭하고 아름다운 명화들이다.

별이 빛나는 밤

  "별이 빛나는 밤에"는 고흐가 고갱과 다투고 자신의 귀를 자른 뒤 생 레미 정신병원에 있을 때 그린 작품으로 고흐의 대표작 중 하나다. 풍경을 직접 보고 그렸던 다른 작품과는 다르게 자신이 언젠가 봤던 밤하늘을 떠올리며 그렸다고 한다. 보색인 진한 남색과 노란색을 사용해 바하늘과 별, 달을 유려한 곡선으로 살아 숨 쉬는 생물처럼 그려냈다. 
 그가 본 세상의 아름다운 모습을 타인도 함께 느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살아생전 그의 작품을 보며 그의 바람을 함께 공감해 준 사람들은 없었다. 그 시대에는 고흐의 스타일이 주류가 아니었나 보다.
 실제로 그가 그린 유화 1,500여 점 가운데 팔렸던 작품은 <아를의 붉은 포도밭> 단 하나였다고 알려져 있다.

밤의 카페테라스

"밤의 카페테라스"는 1888년 작품이다.
그해 9월쯤 프랑스 아를에서 그림을 그렸었다. 지금도 아를의 포룸 광장의 북동쪽 카페거리를 가면 비슷한 느낌의 카페테리아가 있다.

프랑스 아를

 고흐의 예술 인생 중 가장 행복했던 순간에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 바로 "밤의 카페테라스"라고 한다. 고흐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이며 현재도 반 고흐 카페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고 하는데...
 그는 이 작품을 위해 수많은 스케치를 하며 심형을 기울였고 동생들에게 이 작품에 대한 많은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고흐의 그림을 따라 그려본 결과물

 그의 명작을 따라 그리다 보면 그가 바라본 아름다운 세상을 엿볼 수 있었다. 특히 곡선으로 사물의 특징을 표현하려는 그의 화풍이 너무 마음에 들었고 내게는 왜 그런 재능이나 센스가 없는지 아쉽기도 했다.
 하지만 그도 성직자의 삶을 포기하지 않았던가?
 사람은 누구나 자기에게 맞는 재능을 갖고 태어나고 시대의 상황에 따라 그 재능을 인정받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다. 고흐의 말년은 잘 알려진 대로 그가 가진 재능에 비해 너무나도 불행하게 끝났다.
 아무도 그의 그림을 사주지 않아 지독한 가난을 겪어야 했다.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는 작품들을 스스로 볼 때면, 고흐 자신은 생각을 했을까?
 미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그 어딘가에서 오늘날의 고흐가 200년 전 고흐가 느낀 외로움, 극심한 가난과 싸우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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